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①(요나서 3:1~10) 요즘 코로나가 연일 1500명대 이상을 기록하고 델타변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불편하고 힘든 어려움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방역의 강화로 시장경제는 위축되고 특별히 소상공인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무엇보다 두려움으로 삶의 질은 한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비난은 코로나가 나온 곳이나 교회를 향하고 이웃을 향해 서로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삭막한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습니다. 세상 권력은 희생 양을 필요로 하기에 교회에 대해 또는 누군가를 방역의 주범으로 몰아서 분열을 계속해서 조장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계속해서 통제되고 있고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종교의 자유는 방역을 방해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면서 불평등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보면 앞으로 다가오는 대선을 준비하면서 여야가 정신없이 서로를 공격하며 목숨을 건 레이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대로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입니다. 말 그대로 혼란, 카오스의 시대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진리는 가려진채 서로가 서로를 원수 대하듯이 미워하고 정죄하는 아픔을 보고 있습니다. 왜 서로 격려하고 힘을 내서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서로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사회가 되었을까요? 심지어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는 혼돈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난파선이 된 듯합니다. 이러한 때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실까요? 시대마다 어려움은 늘 존재해 왔습니다. 인류는 시대마다 전쟁의 위험, 지진이나 태풍, 자연재해로 큰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었고, 경제난으로 국가가 부도가 나는 엄청난 일들도 있어왔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이나 홍수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역사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왔습니다.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교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 속에서의 교회, 공산주의 핍박속에서의 교회, 타종교의 위협속에서의 교회, 질병이 창궐한 가난한 나라에서의 교회는 여전히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 왔고 지금도 믿음을 지키며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서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까요? 어떤 상황에서든 변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 역사 속에 있었습니다. 아니 변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진 교회, 그런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사용하셨습니다. 바로 남은자들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 교회의 모습이 무엇일까요? 과연 변하지 않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레이븐힐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세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는 복음으로 불타는 심령을 갖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입을 벌려서 복음을 계속해서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끊임없는 중보기도로 흘리는 눈물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대마다 위기 속에서 교회는 변함없이 성령님이 불타는 심령으로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부흥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가져야 할 모습이고 우리 늘순종교회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모습인 줄 믿습니다. 바로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나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가 집권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특별히 요나는 이 당시 가장 강대한 앗수르 제국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또 요나는 구약에 나오는 최초의 선교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이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앗수르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온 열방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계신 것을 요나서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멸망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앗수르 제국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앗수르 제국이 여러 민족들을 침략하여 땅을 넓히면서 엄청난 살육을 저지르게 됩니다. 후에 북이스라엘도 앗수르에게 비참하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 악랄하고 악랄한 모습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를 보내셔서 경고하시려고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싫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 민족을 망하게 하고 지금 자신의 민족을 괴롭히는 앗수르는 당연히 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면 혹시나 앗수르가 회개하고 용서받으면 앗수르는 안 망하니까 아예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느니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칩니다. 하나님은 큰 풍랑을 일으키셔서 요나가 타고 있는 배를 뒤흔드십니다.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요나 때문에 이 재앙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니웨로 갈 수 없다는 요나의 굳은 결단을 보게 됩니다. 요나는 결국 바다로 던져졌지만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사 요나를 집어 삼키게 하시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죽지 않고 3일 동안 푹 절임을 당하면서 철저하게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하고 난 요나를 하나님은 물고기가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3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거듭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요나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 동안 외치며 다닙니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봅니다. 니느웨는 사흘동안 걸을 만큼 큰 도성인데 요나는 겨우 하루만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순종하되 억지 순종, 하다만 순종을 하는 요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쪼잔한 요나! 고집불통 요나! 이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순종하되 철저하게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내용입니까?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요나를 보면서 별 미친놈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졌기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비린내가 진동하고 외모도 남루해서 누가 봐도 거지나 부랑자, 또는 미친놈으로 보기에 합당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니느웨는 이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인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누가 감히 앗수르를 망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상한 미친 사람이 갑자기 등장해서 하루 종일 같은 말을 외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여러분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놈이 헛소리를 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실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과 6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자리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백성들과 왕이 베옷을 입고 회개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금식까지 선포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들까지 베옷을 입게 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고 금식하도록 조서를 내려서 아예 법으로 정해 버립니다. 오늘 본문 7절과 8절을 봅니다. 모든 사람과 짐승까지도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이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회개하되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겨우 하루 다니면서 외친 요나의 말에 이들의 반응은 실로 놀라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습이 지금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 우리가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가져야 할 모습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은 첫 번째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즉, 회개를 할 때라는 말입니다. 가장 먼저 내 자신부터 나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죄, 위정자들의 죄, 이 나라와 민족의 죄, 한국교회의 죄를 내 마음에 담고 회개의 자리에 앉아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의 자리에 앉길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더 거룩해지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가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가져야할 모습은 회개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각기” 라고 말합니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만도 아니고 직분자만도 아니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멀리하고 악한 길을 떠나고 강포를 멈추어야 할 줄 믿습니다.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니느웨 왕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인 것처럼 우리 심령에 새겨지길 소망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 부흥의 때입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교회가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성도들이 진정한 믿음으로 깨어 일어나는 부흥의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흥의 세대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예배가 제한당한다고 불평하며 아우성을 치지만 하나님은 분명하게 역전의 시간을 준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바른 믿음위에 선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과 10절을 봅니다. 하나님께 모든 심판의 주권이 있음을 니느웨 왕은 고백합니다. 자신들이 회개하며 바르게 삶을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인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도록 심판을 거두십니다. 그러자 여기에 삐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니느웨가 멸망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성읍 동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심판을 거두신 것입니다. 여기에 불만을 표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박넝쿨로 시청각 교육을 하시며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4장 10절과 11절을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본질을 회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며 삶을 거룩하게 만들어 갈 때 코로나도 끝이 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이 부흥의 때입니다. 우리가 부흥의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통곡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우리가 이제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기도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기도의 용사들로 서시길 바랍니다. 우리 늘순종 교회의 기도 모토대로 한번 살아봅시다. “나를 바꾸려면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가족과 이웃을 바꾸려면 하루에 두 시간 이상 기도하고 열방을 바꾸려면 하루에 세 시간 이상 기도하자” 할렐루야! 그리고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내 삶속에서 죄악에게 안녕을 고해야 합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내 손에 강포가 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분노를 거두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 저 악한 앗수르도 통곡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취소된 것처럼 우리의 통곡으로 우리의 가족과 이웃과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이제 통곡하며 기도의 자리에서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통곡할때입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할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죄악을 멀리하고 삶에서 거룩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나의 죄악, 이웃과 민족, 열방의 죄악을 올려드리며 통곡하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옵소서! |